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지움 학살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[[우크라이나의 9월 공세]]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이지움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. 오래도록 러시아군의 수중에 있던 터라 탈환 당시 부차와 같은 어떠한 전쟁범죄들이 일어나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는 분위기였으며 조사 결과 이는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. 초기에 440여곳의 매장지를 발견해 약 500구의 시신을 확보했으며 뒤이어 추가 조사로 450구의 시신을 더 발견했다고 밝혔다. 17일 기준으로 아직 초기인데도 불구하고 [[부차 학살]]의 기록을 넘겨버릴 기세다. 이지움 외에도 [[발라클리야]] 러시아군 본부 근처의 고문실에서도 정황이 나왔는데, 마스크가 [[오징어 게임]] [[프론트맨(오징어 게임)|프론트맨]]의 그것이라고 한다.[[https://m.dcinside.com/board/war/2885362?recommend=1|#]] 또한 우크라이나의 공세로 탈환된 쿠퍈스크 지역 셰우첸코베에서도 러시아인이 사용한 처형장과 구금 장소가 확인되었다고 한다. [[https://t.me/svoboda_radio/10776?single|#]] 쿠퍈스크에서는 지하실에서 7일동안 감금되어 있던 5명의 청소년들을 발견하여 구출했다.[[https://ukranews.com/en/news/882341-occupiers-in-kupyansk-closed-5-teenagers-in-basement-children-spent-week-locked|#]] 하르키우 시 북쪽에 위치한 코자차 로판에서도 '''고문실'''이 확인되었다.[[https://nv.ua/ukr/ukraine/events/kozacha-lopan-prokurori-oglyanuli-pidvalne-primishchennya-narodnoji-miliciji-de-katuvali-lyudey-50270687.html|#]] 우크라이나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[*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으나, [[인도인]] 유학생들로 추정된다고 한다.]도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하르키우 동부 지역에서 살해되었다고 예우헨 예닌 우크라이나 내무부 차관이 밝혔다.[[https://n.news.naver.com/article/023/0003716435?sid=104|#]] 3월에 스리랑카인 7명과 쿠퍈스크 의대생들이 러시아군에 붙잡혀 지하에 갇혔으며, 이들은 하르키우주 해방 이후 구출돼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.[[https://www.bbc.com/news/world-europe-62948148|(스리랑카인 7명의 이야기)]] 조사 결과, 시신의 99%가 고문을 당한 후에 숨진 것으로 파악되었다.[[https://twitter.com/kyivpost/status/1571076297199349763?s=46&t=kNhhZaFx6iSPdlC2UZ5bYw|#]] 결국 UN에서도 조사팀을 이지움으로 파견하기로 결정했다.[[https://news.un.org/en/story/2022/09/1126801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